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살아 있는 고궁을
서울에 살면서도 쉽게 가 볼 생각을 못하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그래도 다른 고궁은 몇 번 가 봤었지만
창경궁은 왜 지금껏 가 볼 생각을 못했을까?
일제강점기에 다른 어떤 궁보다
큰 수난을 겪은 궁궐이 창경궁이었다.
1907년 이후 일본인은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만들면서 많은 건물을 헐어버렸다.
그리고 이름도 창경원으로 다시 지었다.
따라서 1909년부터 1984년까지 창경궁 자리에는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동물원인 창경원이 있었다.
그랬던 창경원을 1980년대에는 민족문화의 창달과
전통문화 유산의 발굴, 보존 등을 위한 정부와
국민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많은 유적이 조사 정비되었다.
1981년 정부는 창경궁 복원 계획을 정하고
1983년에는 10월 130여 종의 900여 마리의 동물들과
591종 2.177분의 식물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1984년 8월까지 동물원 시설 등을 철거하였다.
창경궁 중건 공사는 1985년 시작되었고
1986년 지금의 창경궁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준공되었다.
새롭게 복원하여 단장한 창경궁을
서울에 거주 한지 강산이 네 바퀴를 돌았지만
창경원으로 불릴 70년대 가보고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창경궁을 며칠 전 우연히 가게 되었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서면서
어머! 어머! 하는 감탄사와 함께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이 쿵쾅쿵쾅 가슴을 뛰게 하였다.
서울 도심 중앙에 우리 문화 역사 현장인 고궁이
서울 도심 속에 있는 숲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울창한 숲을 이루어
환상적인 가을 색으로 채색하여
활활 타는 활화산처럼 빨갛게 타는 산수화가
두루마리처럼 펼쳐지며 단아한 고궁을 병풍처럼 둘러 지키고 있었다.
수백 여종의 나무들이 각양각색
가을빛으로 채색되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 내고
아기 손바닥처럼 아장아장한 단풍 잎이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듯 나풀나풀 춤추는 모습은
가을 햇살에 반짝반짝 하늘의 별똥별이 쏟아지는 것 같다.
세계 어디에 내어놓아도 빠지지 않을
우리나라 고궁의 건축미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서울 시민의 품에 있었지만
서울에 그토록 오래 살면서도 잊고 살았던 것이다.
누군들 그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으로 그림을 그려 낼 수 있으랴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작품이리라.
낙엽으로 수북이 쌓인 산책길을
사박사박 낙엽 밟는 소리를 감상하며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며 오래도록 걸었다.
창경궁의 가장 아름다운 명소 춘당지
춘당지는 큰 호수와 작은 호수로 이어져 있었다.
여성스러운 곡선을 선으로 그어놓은 듯
고궁의 호수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큰 호수 춘당지
그런 춘당지가 더 아름다운 이유는
보물로 정해진 원앙새 무리가
현란하도록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고
오색 무지갯빛의 날개를 펼치며
화려한 사랑놀이 뮤지컬을 연주하며
호수 위에서 미끄러지듯 그들만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하여,
더욱 아름다운 명소가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우리는 늘 그런 것 같다.
가까이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잊고 살면서
그저 멀리 있는 것들만을 그리워하며 가지려고 하는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의 서울
이런 서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러운 하루였다.
10년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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