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연과 풍경

안성시 앙성면 미리내 성지

by 수니야 2016. 10. 1.
728x90

 

 

지난 9월 26일
안성 서일 농원을 다녀오는 길에
가보고 싶었던 미리내 성지도 들러 왔습니다.

 

어디든 순교자들 성지를 가면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지고 경건해지는 것은

 

박해를 당하다 순교하신

순교자들의 신앙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미리내 성지 건축 모습은
다른 성당 건물과는 건축물이 많이 달랐습니다.

미리내 성지를 처음 갔었는데
월요일이라서 성당 문이 굳게 닫혀

성당 내부는 들어가 보지 못해
조금은 아쉬움을 안고 겉모습만 보고 담아 왔습니다.

우리나라 천주교의 순교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과 이윤일 요한 신부님 외

16인의 무명 순교자들의 묘소가 있는 성지 더군요.

아래 성당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미리내 성지 홈페이지에서 빌려왔습니다.

 

미리내 성지(안성시 양성면 미산리)는,

한국 최초의 방인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성인의 묘소와,

이윤일 요한 성인의 묘소 유지(遺址), 그리고

<16위 무명순교자의 묘역>이 있는 거룩한 성지이다.


또한 김대건 신부의 묘역에는 김대건 신부에게

부제품과 사제품을 준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高주교, 미리내 초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여

 

1929년까지 33년간 본당을 지킨 초대주임

강도영(姜道永 마르코, 세 번째 방인사제 중 한 분) 신부와,

간도지방 최초의 방인사제였던 미리내 본당 3대주임

최문식(崔文植 베드로) 신부의 묘소가 함께하고 있다.


묘역 왼쪽 윗 편으로는

김대건 신부의 어머니인 고(高) 우르술라의 묘소,

그리고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던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소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사제가 되어 이 땅에 돌아온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1846년 9월 16일 만25세의 나이로 극히 짧은 사목 활동을 마치고는

형장의 이슬이 되어 한 점 흠결 없이 순교하였다.


국사범으로 형을 받은 죄수는 통상

사흘 뒤에 연고자가 찾아 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김대건 신부의 경우는 참수된 자리에

시신을 파묻고 파수 경비를 두어 지키게 했다.

교우촌 어른들의 걱정과 격려를 받은 17세의 미리내 청년

이민식 빈첸시오는 파수군졸의 눈을 피해 김대건 신부님 치명한 지 40일이

 

지난 1846년 10월26일, 몇 몇 교우들과

시신을 한강 새남터 백사장에서 빼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시신을 가슴에 안고 등에 지고, 험한 산길로만 1백50여리 길을

밤에만 걸어서 닷새째 되는 날인 10월 30일 자신의 고향 선산이 있는

미리내에 도착하여 신부님을 무사히 안장 시킬 수 있었다.

 

 

 

 

 

 

 

 

 

 

 

 

 

 

 

 

 

 

 

 

 

 

 

 

 

 

 

 

 

 

 

 

 

 

 

 

 

 

 

 

 

 

 

 

 

 

 

 

 

728x90

'자연과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천 송월동 동화마을  (0) 2017.01.31
우리 집 베란다의 일몰과 빛 내림  (0) 2017.01.16
안성 서일 농원  (0) 2016.09.30
인천 소래 습지 생태 공원  (0) 2016.09.27
파주시 파평면 율곡습지 공원  (0) 2016.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