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연과 풍경

구리시 동구릉의 현릉& 혜릉

by 수니야 2015. 6. 19.
728x90

아래 사진은 5대 문종(文宗)왕의 릉 현릉

 

 

  • 5대 문종(文宗)
  • 능호 : 현릉
  • 위치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6-3
  • 지정번호 : 사적 제193호
  • 조성시기 : 1452년(단종 즉위년) 9월 1일
  • 능의구성
  • 현릉에는 5대 문종과 그의 비 현덕왕후가 잠들어 있다. 이렇게 왕과 왕비를 한 능에 묻는 경우에는 다양한 양식이 존재한다.
  • 현릉의 예처럼, 같은 능의 이름 아래 있지만, 왕과 왕비의 능을 각각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능을 동원이강릉이라고 한다.
  • 정자각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 위의 언덕에 있는 능이 문종의 능이고, 오른쪽 언덕의 능이 현덕왕후의 능이다.
  • 홍살문을 비롯하여 정자각, 비각 등을 하나씩만 만들어놓아 이 능이 동원이강임을 나타내고 있다.
  •                   

  • 현릉의 능제는 『국조오례의』의 본이 된 세종대왕의 예전 능의 제도를 따랐다.
  • 병풍석에서는 이전 왕릉에 있던 방울과 방패 무늬가 사라졌고 구름무늬가 도드라진다. 고석도 4개로 줄었다.
  • 제일 아랫단에는 장검을 두 손으로 짚고 서 있는 무석인이 있는데 머리와 눈, 코가 매우 크게 표현되었다.
  • 문석인도 튀어나온 눈과 양쪽으로 깊이 새겨진 콧수염이 이국적이다.
  • 신도비는 임금의 치적이 국사에 실리기 때문에 굳이 사대부처럼 신도비를 세울 필요가 없다는 의논에 의해서 이때부터 건립하지 않았다.
  • 능의역사
  • 5대 문종은 왕위에 오른 지 3년 만인 1452년(단종 즉위) 5월에 경복궁 정전에서 승하하였다.
  • 건원릉의 남동쪽에 현릉을 조성하였다. 능지를 정할 때에는 수양대군, 왕보인, 김종서, 정인지 등의 대신을 비롯하여 풍수학랑관이 현지를 답사하고 정하였다.
  • 그의 비인 현덕왕후 권씨는 문종이 승하하기 11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 1441년(세종 23) 단종을 낳고 병이 위독해져 24세의 나이로 문종보다 먼저 승하하였는데, 안산의 소릉에 장사지냈다.
  • 이후 단종의 복위 사건에 의해 1457년(세조 3) 추폐되었다가 1512년(중종 7) 복위되어 그 다음해 봄, 문종이 묻혀 있는 현릉의 왼쪽 산줄기 언덕에 천장하였다.
  • 사후 72년 만에 왕의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렇게 하여 동원이강릉을 조성한 후에는 정자각을 두 능의 중간 지점으로 이건하였다.
  • 이 때 양릉 사이에 소나무가 빽빽하게 있었는데, 능역을 시작하자 저절로 말라 죽어 두 능 사이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  

    *동구릉 홈페이지에서 발췌*

     

     

     

     

     

     

     

     

     

     

    아래는 단의왕후(端懿王后) 심씨의 릉 혜릉은 공사중이었다.

     

     

  • 단의왕후(端懿王后) 심씨
  • 능호 : 혜릉

    위치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10-2

    지정번호 : 사적 제193호

    조성시기 : 1718년(숙종 44) 4월 19일

     

    능의구성

    혜릉(惠陵)은 동구릉 서측 능선 숭릉과 경릉 사이에 조성된 단릉이다.

    비교적 낮은 구릉에 조성되었으며, 능역이 전반적으로 좁은 형태이다.

    석물의 크기 또한 다른 왕릉 보다 작게 만들어졌다. 단의왕후가 승하 시에는 세자빈의 신분이었으므로, 원의 형식으로 단출하게 지었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곡장 안의 봉분은 병풍석 없이 12칸의 난간석만 둘러져 있고, 봉분 주위에는 네 쌍의 석호와 석양이 교대로 배치되어 있다.

    문석인은 173cm의 키에, 눈을 치켜뜬 차가운 이미지로 조각되었다.

    무석인은 문석인보다 약 10cm 큰 키에, 이목구비가 상당히 이국적인데 특히 치아를 잔뜩 드러내 놓고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망주석 역시 다른 능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만들었는데 조각된 세호의 좌우 방향이 다르게 되어 있다. 장명등은 현재 터만 남아 있고 사라진 상태이다.

     

    능의역사

    1718년(숙종 44) 경종의 비 단의왕후 심씨의 혜릉을 조성하였다.

    단의왕후는 1718년(숙종 44) 2월 7일 소생이 없이 창덕궁 장춘헌에서 세자빈의 신분으로 승하하였다.

    2월 8일에 소렴하고, 9일에 대렴하였다. 산역은 각 도에서 승군 1,000명을 징발하여 조성하였다.

    4월 16일에 발인하여, 19일 현종의 능인 숭릉 왼쪽 산줄기에 안장하였다. 1720년 경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추봉하여, 능의 이름을 혜릉이라고 하였다.

    경종과 계비 선의왕후는 서울 성북구 석관동의 의릉에 같이 모셔져 있으나, 일찍 승하한 단의왕후의 능인 혜릉은 이곳에 홀로 조성되었다.

    6.25로 인해 홍살문과 정자각이 불타서 주춧돌만 남은 상태였으나 1995년 새로 복원하여 왕릉의 면모를 다시금 갖추게 되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