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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풍경

중구 광희동에 있는 광희문

by 수니야 2018.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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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광희동 동대문 근처에 있는 광희문을 아시나요?

 

저도 지나다니면서 보기는 했고

서울의 사대문 중 한문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고 사진을 담고

광희문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아래 광희문의 상세한 설명은

네이버 지식 백과에서 발췌했습니다.

 

 

광희문은 남산에서 장충체육관을 지나 성곽을 따라가면 만나는 문이 광희문이다.

광희문은 수구문(水口門) 또는 시구문(屍口門)이라고도 불리는 광희동 2가에 있는 성문이다.

 

세조 2년(1456)에 서울 동남방, 곧 장충동 2가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남소문을 내고 광희문(光熙門)이라 하였다.

 

예종 원년(1469)에 경복궁에서 황천문이 된다 하여

그 문을 막고 광희동 2가에 새로 수구문을 내는 동시에,

남소문의 현판인 광희문을 갖다가 새 문에 달았다.

 

옛날에 서울 사람이 죽으면 시체를 이 문으로 내가서

신당동, 왕십리, 금호동 쪽으로 운반해 매장했으므로 속칭 시구문이라 불렀다.

 

김지하의 시 「녹두꽃」의 시구인

“별 푸른 시구문 아래 목 베어”가 떠오르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그곳에서 흥인지문이라고 부르는 동대문이 멀지 않다.

흥인지문은 조선시대에 중요한 국가 시설이 있는 한성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성문이다.

 

즉 성곽에 있는 여덟 개의 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이다.

흔히 동대문이라고 부르는데 도성을 쌓을 때 같이 짓기 시작하여

조선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

지금 있는 문은 고종 6년(1869)에 새로 지은 것이다.

예로부터 흥인지문 밖에는 버드나무가 울창해서

‘흥인문 밖의 버들’이라 하여 필운대의 살구꽃, 북둔의 복사꽃,

천연정의 연꽃, 삼청동과 탕춘대의 수석과 더불어 서울의 놀이터로 유명하였다.

 

흥인지문에서는 가뭄이 심하면 기우제를 올렸고,

반대로 긴 장마가 져도 비를 그치게 해달라는 영제(禜祭)를 올렸는데,

그 이유는 큰 장마가 들수록 항상 동대문에 물이 들기 때문이었다.

흥인지문은 도성 8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는 문화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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