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면 고궁의 가을을 꼭 만나고 싶어 고궁을 찾아간다.
지난 11월 10일은 덕수궁을 가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이용해 시청 앞에 내리니
서울 도서관 앞에 작은 국화 축제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잠시 국화 축제 사진 몇 장을 담고
덕수궁으로 발길을 돌려 덕수궁에 들어서는 순간 헉! 깜짝 놀랐다.
덕수궁에도 가을색은 절정으로 물들어
화려한 가을 풍경이 내 가슴을 콩닥거리게 만들었던 하루
내 삶의 여정 세상 풍파 다 겼으며 살아왔으니
지칠 대로 지쳐 감성조차 무뎌질만 하건만
아직도 작은 것에도 감동 하며
콩닥거리는 감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 또 한 감사할 일이다.
일제 강점기에 숱한 아픈 상처가 있는 덕수궁이지만
지금은 시민들의 평안한 안식과 쉼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공간에서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가을 풍경에
퐁당 빠져 헤어날 줄 모르고 보냈던 하루
그 하루를 또 감사함으로 보낼 수 있었다.
창건 |
1592년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의주로 피난 갔던 선조가 1년 반만에 한양으로 돌아왔으나, 한양의 모든 궁궐은 왜군에 의해 불타 없어져 머물 궁궐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당시 황화방(皇華坊)에 위치한 월산대군(月山大君) 후손의 집과 인근의 민가 여러 채를 합하여 임시 행궁(行宮)으로 삼고 '시어소(時御所)'로 머물게 되었으니, 이것이 훗날 덕수궁(경운궁)의 시작이었다. 선조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궁궐을 재건하려 했으나, 당시의 궁핍한 국가재정 상황 등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1608년 2월 정릉동 행궁 정전(석어당 추정)에서 승하하고 만다. 선조의 뒤를 이어 이 곳에서 즉위한 광해군은 1611년창덕궁을 재건하여, 그해 10월 창덕궁으로 이어(移御)하면서 '경운궁(慶運宮)'이란 이름을 비로소 짓게된다. 병조판서 이항복을 시켜 경운궁의 담장을 두르고 궁궐로써의 면모를 가다듬는 것도 이 무렵의 일이다. 하지만 광해군은 곧 다시 경운궁으로 돌아와 머물다 1615년 창덕궁으로 아주 이어(移御)를 한다. 한편 1623년 인조반정의 성공으로 광해군을 폐위시킨 인조는 광해군에 의해 경운궁에 유폐되어 있던 인목대비로부터 왕으로 인정을 받고, 경운궁 별당(즉조당 추정)에서 즉위한 뒤 인목대비를 모시고 창덕궁으로 이어하게 된다. 이때 인조는 선조가 머물던 즉조당과 석어당 두 곳만 남기고, 나머지 경운궁의 가옥과 대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경운궁을 아주 떠나게 된다. 이로써 경운궁은 왕이 공식적으로 머물며 국정업무를 보던 궁궐로써 기능을 마감하였다. 이후 영조때(영조 49) '선조가 경운궁(덕수궁)에 거처를 정한 3주갑(180년)과 선조의 기일(승하일)을 맞이해, 영조가 세손(정조)과 함께 경운궁 즉조당에서 추모 사배례(四拜禮)를 올리는' 등 기념의식을 갖기도 하였고, 고종 30년(1893)에 '선조가 경운궁에 거처를 정한 5주갑(300년)을 맞아 고종이 세자(순종)와 함께 경운궁 즉조당에서 추모 사배례(四拜禮)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난 후 1897년 고종이 다시 이곳으로 환어(還御)하기 전까지 비어있게 된다. |
대한제국시대, 일제시대의 덕수궁 |
그런 경운궁이 다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1895년 10월 경복궁에서 명성황후가 무참히 살해된 북쪽의 구름다리는 러시아 공사관 언덕 위에서 경희궁으로 이어져 있었고, 남쪽의 구름다리는 중화전 |
광복이후 현재의 덕수궁 |
광복을 맞으면서, 덕수궁 내의 석조전이 새로운 역사 문화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그 해 10월 해방기념 미술전람회가 개최되었으며, 그 이듬해 1월에는 미소공동위원회 임시회의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또한 1948년부터 1950년 6.25가 발발할 때까지 UN한국위원단에서 석조전을 사용하였다. 1954년 6월에는 석조전을 국립박물관으로 처음 사용하였으며, 1955년에는 석조전 건물의 일부를 육군 공병단에서 수리 복원하였다. 1961년 10월 정식관리기구인 덕수궁관리사무소가 설치되어 관리를 전담하게 되었다. 그 해 11월 서울특별시 도시계획에 의한 제 1차 도로확장공사로 시청 쪽 담장이 철거되고 철책으로 대체되었다. 그 이듬해에는 7월 덕수궁을 사적 제 124호로 지정하였다. 다시 1968년 5월에는 서울시 도로확장공사로 시청쪽 도로에 편입되어 설치된 철책을 철거하고 담장을 설치하였다. 또한 그 해 7월에는 남대문경찰서 태평로파출소가 덕수궁 동북담모서리에 신축되었으며, 이 공사로 덕수궁 대지 25평이 편입되었다. 7월 15일에는 담장 이전공사로 담장 만을 궁 내부로 이전하고 대한문(大漢門)은 원위치 도로상에 폐쇄 고립됨. 당초 당 궁 총면적 20,114평 중 1,977평이 도시계획 등에 의해 편입되어 18,137평이 보존관리 면적으로 남게 되었다. 그 이듬해에는 덕수궁에서 관리하여오던 미술관을 국립박물관으로 이관하였다.(대통령령 제3525호) 1970년 8월에는 도로상에 폐쇄 고립된 대한문(大漢門) 이설공사를 착공하여 1971년 1월 2일 이설 준공되었다. 1973년부터 86년까지 석조전 서관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었으며, 98년 8월 석조전 서관이 다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 개관하였다. 1992년 12월 덕수궁 관리사무소의 직제가 궁중유물전시관으로 확대 개편되었다. 궁중유물전시관은 덕수궁관리는 물론 5대궁궐 13개능원에 분산 소장되어있던 궁중유물을 한군데 집중 관리하게 되었으며, 석조전에 일반인들을 위한 전시관도 개관하게 되었다. 2005년 8월15일 궁중유물전시관은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전하였고, 덕수궁의 관리는 다시 덕수궁관리소에서 하고 있다. |
덕수궁 홈페이지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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