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7호로 지정되었다.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高宗:재위 1863∼1907)이 출생하여
12세에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성장한 잠저(潛邸)이다.
철종(哲宗:재위 1849∼1863)의 뒤를 이어 고종이 즉위하자
생부(生父) 이하응(李昰應)은 흥선대원군이 되었고,
생모 민씨는 여흥부대부인(驪興府大夫人)의 봉작을 받았다.
세제개혁 등 많은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壬午軍亂) 때 운현궁에서
흥선대원군의 한옥과 양관(洋館)을 모두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원래는 궁궐에 견줄 만큼 크고 웅장하였다고 하며,
대원군이 즐겨 쓴 아재당(我在堂)은 없어지고,
한옥은 사랑채인 노안당(老安堂), 안채인 노락당(老樂堂)과
별당채인 이로당(二老堂)만이 남아 있다.
또한 대원군의 할아버지 은신군(恩信君)과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南延君)의 사당(祠堂)도 있었으며,
고종이 창덕궁(昌德宮)에서 운현궁을 드나들 수 있는
경근문(敬覲門)과 대원군 전용의 공근문(恭覲門)이 있었으나 모두 헐리고 없어졌다.
노안당과 노락당은 가운데에 큰 대청(大廳)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이 있는데, 노안당은 초익공 양식을 이루고
노락당은 칠량집으로 우물천장이다.
운현궁의 양관은 본래 대원군의 손자인
이준(李埈)의 저택으로 1912년 무렵에 건립되었는데,
1917년 이준이 죽은 뒤 순종(純宗)의 아우인
의친왕(義親王)의 둘째아들 이우가 이어받았으나
지금은 덕성여자대학교 건물로 일부 쓰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발췌
아래는 운현궁 유물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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