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연과 풍경

종로구 운니동 운현궁

by 수니야 2019. 2. 6.
728x90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7호로 지정되었다.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재위 1863∼1907)이 출생하여

12세에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성장한 잠저()이다.


철종(:재위 1849∼1863)의 뒤를 이어 고종이 즉위하자

생부() 이하응() 흥선대원군이 되었고,

생모 민씨는 여흥부대부인()의 봉작을 받았다.


이곳에서 대원군은 서원철폐, 경복궁 중건,

세제개혁 등 많은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때 운현궁에서

중국 ()나라 톈진[]으로 납치되었다.

흥선대원군의 한옥과 양관()을 모두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원래는 궁궐에 견줄 만큼 크고 웅장하였다고 하며,

대원군이 즐겨 쓴 아재당()은 없어지고,


한옥은 사랑채인 노안당(), 안채인 노락당()

별당채인 이로당()만이 남아 있다.


또한 대원군의 할아버지 은신군()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사당()도 있었으며,


고종이 창덕궁()에서 운현궁을 드나들 수 있는

경근문()과 대원군 전용의 공근문()이 있었으나 모두 헐리고 없어졌다. 

노안당과 노락당은 가운데에 큰 대청()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이 있는데, 노안당은 초익공 양식을 이루고

노락당은 칠량집으로 우물천장이다.


운현궁의 양관은 본래 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의 저택으로 1912년 무렵에 건립되었는데,


1917년 이준이 죽은 뒤 순종()의 아우인

의친왕()의 둘째아들 이우가 이어받았으나

지금은 덕성여자대학교 건물로 일부 쓰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발췌

























아래는 운현궁 유물 전시관













728x90